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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역사

○ 선사시대
대양면 대목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석기류와 합천댐 건설 당시 1984년에서 1985년까지 실시한 수몰지역 지표조사를 할때 대병면과 봉산면 일원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보아 이곳 합천지역은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삼한시대
전 지역이 변한에 속하였으며, 합천지방에는 대량국, 삼가지방에는 산반해국, 초계지방에는 초팔혜국이 있었으며, 야로지역에는 적화국이 있었다. 또한 1985년부터 1992년까지 경상대학 박물관팀의 옥전고분 발굴작업에서 순금제품, 금동제품, 철제품, 토기 등이 출토되어 당시 이지역이 다라국이라 기술한 「일본서기」의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다.

○ 가야시대
가야시대에 합천군은 고령의 대가야나 창녕의 빛벌가야의 세력권에 속하여 가야연맹의 일원이었으며 특히 합천지역에는 가야시대 다라국 등 유력한 나라가 존재하였던 곳으로 서기 1~2세기경부터 대가야국과 연맹관계에 있었다.

○ 삼국시대
신라 파사왕 29년(108) 초팔혜국이 신라에 정벌되면서 초팔혜현이 설치되었다.
진흥왕 23년(562) 대가야국이 신라장군 이사부에 의해 멸망되면서 전 지역이 신라에 영속 되었다.
진흥왕 26년(565) 합천지역에는 대량주가, 야로지역에는 적화현이 설치되었다.

○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 신라가 서기 555년(진흥왕 16) 창녕의 빛벌가야를 병합하고 이곳에 하주를 두었다가 서기 562년 고령의 대가야를 정복하면서 합천지방까지 진출함으로써 이때부터 합천은 신라에 속하게 되었고, 따라서 창녕의 하주를 합천으로 올겨 대야주를 설치하고 백제에 대항하는 전투기리로 삼았다.
- 서기 642년(선덕여왕 11) 백제장군 윤충이 1만 대군으로 대야성을 공격할 때 도독인 대야성주 김품석이 아내 고타소랑과 함께 자결했으며, 대야주 사람 죽죽은 결사 항전 후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 서기 676년(문무왕 16)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대야성은 성곽을 지킬 필요성이 없게 되었다.
- 경덕왕 16년(575) 합천지역의 대량주가 군으로 강등되면서 강양군으로 불리웠으며 동년에 초팔혜현은 팔계현으로 개칭되면서 강양군에 영속되었고, 가주화현이 가수현으로 개칭되어 강주(지금의 진주)의 속현이 되었다.
- 가주화현
신라가 삼국통일후 지금의 삼가지방에 가주화현을 설치하였다.
- 삼지현은 삼기현으로 개칭되어 강양군의 속현이 되었고
- 적화현이 야로현으로 바뀌면서 고령군에 영속 되었다.

○ 고려시대
현종 9년(1018) 강양군이 주로 승격되었고, 속현으로 아래 11현을 두었다.(거창, 팔계, 삼기, 가수, 단계, 가조, 리안, 신반, 산음, 야로, 함양) 그리고 동년에
- 팔계현이 초계현으로 개칭되어 합주에 영속되었으며,
- 가수현, 삼기현, 야로현도 모두 합주에 영속되었다.
- 명종 2년(1172) 초계현에 감무를 두었다.
- 충숙왕 복위3년(1334) 초계현이 군으로 승격 되었다.
(이는 초계 출신 정수기와 변우성이 왕실에 큰 공을 세운 공로가 인정되어 승격시켰다고 함)
- 공민왕 22년(1373년) 삼기현에 감무를 두었다.

○ 조선시대
- 태조 3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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